사래ㆍ사천(泗川)ㆍ사천리(泗川里)
- 작성일
- 2017.01.2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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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영양군 남면의 지역에 속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신촌동ㆍ서치동ㆍ사천동을 병합하여 신촌과 사천의 이름을 따서 신사동이라 하고, 마을이 내에 접하여 형성되어 있으므로 그에 따라 사래라 명하였다. 내의 상류로부터 차례로 형성된 마을을 일컬어 각각 웃사래ㆍ중간사래ㆍ아랫사래라 하며 이 세 마을이 모여 하나의 마음을 이룬다.
고종 4년에 수비 사람 이제발(李堤發)이 동학교의 시죠인 최제우(崔濟愚) 선생이 처형되자 원수를 갚기 위하여 이 곳에서 무리를 모아 힘을 합하여 영해부를 빼앗았다가 현감 이복우(李福愚)와 관군에게 붙잡혀 죽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전해져 오고 있다(이규섭(51) 제보.
김정호 선생의 『대동지지(大東地志)』를 보면 '사'는 거의가 새롭다는 뜻을 드러낸다 하였거니와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라고 본다. 하면 새롭게 생긴 내가 바로 사천이라고 할 수 있다.